웹소설 - 원 코인

원 코인 · 게임 인생 50년 5장

djai 2026. 6. 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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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994 입시 시대의 PC 게임: 둠·페르시아의 왕자·창세기전과 한국 RPG의 첫 빛

요약 — 1992년 서태지의 등장, 1993년 id Software 둠(DOOM)의 1인칭 충격, 1994년 손노리 어스토니시아 스토리·1995년 소프트맥스 창세기전 등 한국산 RPG의 황금기. 한국 고등학생의 입시 시대를 통과하는 게이머의 시점.


스트리트 파이터 II — 인간 대 인간의 대전 (재현 일러스트)

한눈에 보는 핵심 3줄

  • 1993년 둠(DOOM, id Software) — 본격 1인칭 슈팅(FPS) 장르의 시작.
  • 1994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손노리) — 한국산 본격 RPG의 시작.
  • 1995년 창세기전(소프트맥스) — '게임을 하다 우는' 한국 RPG 서사의 정점.

고등학교와 입시라는 보스전

1992년 봄, 텔레비전에 세 명의 청년이 나타나 이상한 춤을 추며 빠른 노래를 불렀다. 심사위원들은 낮은 점수를 줬지만, 우리는 단번에 알았다. 세상이 방금 바뀌었다는 것을.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의 등장은 우리 세대에게 하나의 사건이었다. 어른들의 점수표와 우리의 열광이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 최초의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어른들이 모르는 우리만의 문화를 가졌다는 자각을 했다. 그리고 그 자각은 게임에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게임을 "애들 버리는 것"이라 했지만, 우리는 알았다. 그것이 우리만의 언어이고, 우리만의 세계라는 것을.

1993년,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의 모든 고등학생에게 부과되는 그 거대한 보스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대학입시. 그것은 3년 뒤에 등장할 최종 보스였고, 그 보스를 깨기 위해 우리는 매일 밤 야간자율학습이라는 던전에서 레벨을 갈아야 했다.

문제는, 게임이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 인생은 늘 이런 식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할 때, 가장 재미있는 유혹이 찾아온다.

이 무렵 가정용 게임기는 '16비트' 시대로 진입했다. 슈퍼패미컴, 메가드라이브. 한국에서는 현대가 '슈퍼컴보이', 삼성이 '슈퍼알라딘보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8비트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그래픽과 사운드. 색은 풍부해졌고, 음악은 웅장해졌으며, 캐릭터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종철이는—그렇다, 또 종철이다—슈퍼컴보이를 손에 넣었고,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게임이 '예술'일 수 있다는 막연한 예감을 느꼈다. 화면이 단지 점들의 집합이 아니라, 누군가가 정성껏 그린 그림이고, 들려주는 음악이고, 들려주려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예감.

PC 쪽에서도 격변이 일어났다. 1993년, '둠(DOOM)'이라는 게임이 등장했다. 화면이 1인칭 시점이었다. 내가 곧 화면이 되어, 통로를 걷고, 모퉁이를 돌고,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게임. 그전까지 나는 늘 화면 밖에서 캐릭터를 조종하는 신(神)의 위치에 있었는데, 둠은 나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였다. 내가 곧 그 손이고, 그 총이고, 그 공포였다. 처음 둠을 했을 때 나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진짜로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게임이 사람을 무섭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건이었다.

둠·페르시아의 왕자 — PC 게임의 1인칭과 시간 압박

'페르시아의 왕자'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진짜처럼 움직였다. 달리고, 점프하고, 매달리고, 칼싸움을 하는 그 동작 하나하나가 부드럽고 사실적이었다. 함정을 피해 1시간 안에 공주를 구해야 한다는 그 시간 제한은, 마치 입시의 압박을 게임으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나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하면서 늘 시간에 쫓겼고, 현실의 나 역시 늘 시간에 쫓겼다. 모의고사 시간은 늘 모자랐고, 함정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으며, 공주는—그러니까 좋은 대학은—늘 다른 성에 있는 것 같았다.

이 시절 우리에게는 게임 잡지라는 성서(聖書)가 있었다. 매달 서점에서 게임 잡지를 사 모으는 것은, 게임 자체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식이었다. 두툼한 잡지에는 신작 소식, 화려한 스크린샷, 그리고 무엇보다 '공략'이 실려 있었다. 부록으로 딸려오는 게임 데모 CD는 보물이었다. 정작 게임은 못 사도, 잡지에 실린 스크린샷만 보며 상상으로 그 게임을 했다. 친구들끼리 잡지를 돌려 보고, 마음에 드는 페이지는 찢어서 책받침에 끼웠다. 게임을 '하는 것'만큼이나 게임을 '읽고',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문화가 그 시절엔 분명히 있었다. 어쩌면 게임이 가장 귀하고 비쌌기에, 우리는 게임을 더 깊이 음미할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공략을 둘러싼 우정과 권력관계도 있었다. 어려운 게임의 비밀 통로나 보스 공략법을 아는 친구는, 반에서 일종의 권력자였다. "야, 그거 어떻게 깨?"라고 물으면, 아는 녀석은 거드름을 피우며 천천히 알려주었다. 정보가 곧 권력이던 시절. 인터넷이 없던 그때, 게임 공략은 입에서 입으로, 잡지에서 책받침으로, 그렇게 아날로그적으로 전파되었다. 지금처럼 검색 한 번이면 모든 공략이 쏟아지는 시대의 아이들은, 그 시절 정보 하나의 무게를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비밀 커맨드 하나를 알아내는 것이, 그때는 작은 모험이었다.

오락실에는 슈팅과 격투만 있었던 게 아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스트라이커즈', 로봇이 변신하며 싸우는 게임들, 그리고 두더지를 망치로 때리거나 농구공을 던지는 체감형 기계들도 있었다. 동전 노래방 기계가 한쪽에 놓이기도 했다. 오락실은 단순한 게임장이 아니라, 그 시절 십 대들이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지트'였다. 학교와 집과 학원 사이, 어른들의 감시가 잠시 닿지 않는 그 어둑한 공간. 우리는 거기서 게임만 한 게 아니라, 친구를 사귀고, 정보를 나누고, 작은 일탈을 연습하고, 어른이 되는 법을 어설프게 배웠다. 오락실은 우리 세대의 비밀 교실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게임은 죄책감과 한 몸이었다. 야자를 째고 오락실에 가면, 셔터를 반쯤 내린 어두운 오락실에서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녀석들과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못 본 척했다.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이었다. "너도 여기 있었다는 거, 나도 여기 있었다는 거, 우리 둘 다 비밀로 하자." 그 어두운 오락실에서, 우리는 입시라는 보스전을 잠시 외면한 채 스트리트 파이터의 류와 켄으로 맞붙었다. 그 30분의 일탈이 주는 해방감은, 죄책감의 무게에 정확히 비례했다. 죄가 클수록 쾌락도 컸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어스토니시아·창세기전 — 국산 RPG의 첫 빛

이 시절, 게임만큼이나 내 마음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게임'이 있었다. 짝꿍이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다만 그 애는 옆 반이었고, 도서관에서 자주 마주쳤으며, 웃을 때 한쪽 보조개가 들어갔다. 나는 그 애에게 말을 거는 일을, 마치 한 번도 깨본 적 없는 어려운 게임의 최종 보스처럼 여겼다. 커맨드를 외우듯 머릿속으로 대사를 연습했다. "저, 혹시…… 이 문제 어떻게 푸는지……" 수백 번을 시뮬레이션했지만, 막상 그 애가 다가오면 내 손가락은—아니, 내 입은—얼어붙었다. 승룡권 커맨드는 자다가도 나오는데, "안녕"이라는 두 글자는 죽어도 나오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삐삐'가 있었다. 호출기. 숫자만 보낼 수 있는 그 작은 기계로, 우리는 암호 같은 숫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1004는 천사, 486은 사랑해, 8255는 빨리오오. 나는 그 애의 삐삐 번호를 알아내려고 친구를 통하고 또 친구를 통하는, 인생에서 가장 복잡한 퀘스트를 수행했다. 결국 번호를 알아냈지만, 막상 무슨 숫자를 보내야 할지 몰라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십 대의 가장 큰 패배였다. 게임에서는 수백 번 죽어도 동전을 넣으면 다시 도전할 수 있었지만, 첫사랑이라는 스테이지는 컨티뉴가 없었다. 카운트다운이 다 지나가도록 나는 동전을 넣지 못했고, 화면은 그대로 GAME OVER. 그 애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고, 나는 그 보조개를 다시 보지 못했다. 인생에는 오락실과 달리, 영영 컨티뉴가 안 되는 화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열일곱에 처음 배웠다.

1994년, 격투 게임은 전성기를 맞았다. '킹 오브 파이터즈', '사무라이 스피리츠', 그리고 '철권'. 특히 철권은 충격이었다. 격투 게임이 3D가 된 것이다.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움직이고, 화면이 회전했다. 평면이던 세계가 부피를 얻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입체감 앞에서, 게임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어렴풋이 보았다. 점점 더 진짜 같아지는 쪽으로. 점점 더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지는 쪽으로.

게임 잡지·데모 디스켓과 첫사랑이라는 숨겨진 스테이지

고3이 다가오자 게임과 나는 강제로 멀어졌다. 부모님은 컴퓨터를 안방으로 옮겼고, 오락실 출입은 사실상 금지되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수학의 정석을 펼쳤지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류가 장풍을 쏘고 마리오가 점프를 했다. 야자 시간에 몰래 그린 교과서 귀퉁이의 낙서는 죄다 게임 캐릭터였다. 선생님이 "정우 너는 그 그림 그리는 정성으로 공부를 해라"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정성은 공부로 옮겨지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는 걸. 좋아하는 일에 쏟는 정성과 해야 하는 일에 쏟는 정성은, 같은 정성이 아니라는 걸.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입시라는 보스전을 향해 흘러갔다. 나는 게임에서 배운 모든 것을 그 보스전에 적용하려 애썼다. 패턴을 외우고, 약점을 파고, 인내심을 갖고 버티고. 다만 한 가지, 게임과 입시의 결정적 차이는—입시에는 1942의 공중제비 같은 비상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위기가 와도 화면 전체를 지울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저, 떨어지는 블록을 한 줄 한 줄 채워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95년 겨울, 나는 마침내 그 보스전의 결과표를 받아 들었다. 결과는—전설적이지도, 비참하지도 않은, 딱 류다운 점수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게임 오버는 아닌. 나는 서울의 한 대학에, 그것도 합격이 그리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어중간한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보스전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보스를 넘으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스테이지가 펼쳐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PC 게임의 세계도 풍성했다. 도스(DOS) 환경에서 우리는 게임 하나 실행하려고 복잡한 명령어와 메모리 설정을 외워야 했는데, 그 수고 자체가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코에이의 '삼국지'로 밤을 새우며 천하를 통일했고,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말장난 가득한 영어 대사를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국산 게임도 있었다. 우리말로 만들어진 슈팅 게임과 액션 게임이 나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괜히 뿌듯해했다. 게임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게임 데모가 담긴 디스켓이나 CD가 딸려 왔는데, 그 부록 하나를 위해 잡지를 사는 일도 흔했다. 본편은 못 사도 데모는 닳도록 했다. 맛보기 한 판을 수십 번 반복하면서, 우리는 사지 못한 게임의 전체를 상상으로 완성했다. 가난한 시절의 게이머는, 가지지 못한 것을 상상으로 채우는 법을 일찍 배운다.

대학.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혼자 하는 게임의 시대가 끝나고 '함께 접속하는 세계'가 열리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문이었다.


1992~1994 한국 게임·시대 핵심 연표

연도 / 나이 게임 · 시대 정우의 삶
1993 (17세) 둠 · 페르시아의 왕자 고등학교 입학, 입시 보스전
1994 (18세) 철권 ·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첫사랑 스테이지, 삐삐를 못 보내고 패배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둠(DOOM)의 출시는?
1993년 12월 미국 id Software 출시. 1인칭 시점에서 통로를 걸으며 적을 쏘는 FPS 장르를 정립했고, 모드(MOD) 문화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Q2.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1994년 한국 손노리 출시. 한국에서 만든 본격 PC 롤플레잉 게임의 효시 중 하나로, 우리말 대사로 모험을 진행하는 첫 경험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Q3. 창세기전은 어떤 게임?
1995년 한국 소프트맥스 출시. 웅장한 세계관과 비극적 서사로 1990년대 한국 게이머들에게 '게임으로 운다'는 경험을 처음 안겨준 시리즈입니다.

Q4. 1990년대 한국 게임 잡지는?
게임챔프·게임월드·컴퓨터학습 등이 대표적이며, 부록으로 게임 데모가 담긴 디스켓이나 CD가 딸려와 본편 못지않게 인기였습니다.


시리즈 안내

이 글은 「원 코인 — 어느 1977년생의 게임 인생 50년」 연재 시리즈의 제5장 · 1992–1994 편입니다.

  • 이전 편: 제4장 · 1989–1991
  • 다음 편: 제6장 · 1995–1996
  • 시리즈 소개: 원 코인 — 어느 1977년생의 게임 인생 50년

참고

  • 나무위키, 〈둠(DOOM)〉
  • 나무위키, 〈창세기전〉
  • 나무위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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